금화와 은화가 화폐의 중심이던 시대에도 동전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은이나 금을 녹이고 순도를 맞춰 일정한 무게로 나눈 뒤 금형으로 찍는 데 비용이 들었고, 화폐를 발행할 권리를 가진 군주나 국가는 조폐과정에서 일정한 몫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시뇨리지(seigniorage)다.
목차
개인이 가져온 은이 주화가 되기까지
중세와 근세 유럽의 일부 조폐제도에서는 상인이나 개인이 은과 금을 조폐소에 가져와 주화로 바꾸었다.
조폐소는 금속의 무게와 품질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정련한 뒤 규격에 맞는 주화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맡긴 금속의 무게가 그대로 동전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주화를 만드는 데는 연료, 장비, 인력, 금형 관리 같은 비용이 필요했다. 여기에 발행권을 가진 군주가 조폐에서 가져가는 몫이 더해졌다.
이 과정을 현대 동전의 ‘액면가와 금속값 차이’만으로 설명하면 부족하다. 귀금속 주화의 경우 조폐소에 들어온 금속과 만들어진 주화의 규격, 수수료와 발행권이 제도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브라사주와 시뇨리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역사적 조폐제도를 설명할 때 브라사주(brassage)와 시뇨리지를 구분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브라사주는 주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폐비용에 가까운 개념이다. 금속을 녹이고 정련하고 주조하는 실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몫이다.
시뇨리지는 화폐 발행권을 가진 군주나 국가가 조폐과정에서 얻는 수입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현실의 제도에서는 두 항목이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분리돼 기록된 것은 아니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폐수수료의 명칭과 계산방식도 달랐다. 특정 왕국의 수입을 분석하려면 그 시대의 조폐규정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같은 시뇨리지라는 용어도 연구자와 시대에 따라 포함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어떤 문헌은 군주의 순수입만 좁게 가리키고, 어떤 설명은 조폐과정에서 발행기관이 확보한 수입을 넓게 묶어 사용한다.
역사적 사례에서는 용어 자체보다 금속을 맡긴 사람이 얼마를 돌려받았고, 조폐소와 군주가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공제했는지를 보는 편이 안전하다.
영국의 Short Cross 주화(1180~1247)에서는 구체적인 숫자도 남아 있다.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의 조폐사 연구에 따르면 은 1파운드를 주화로 만들 때 6펜스가 머니어의 조폐비용으로 부과됐고, 추가 6펜스는 왕의 이익인 시뇨리지로 거뒀다. 같은 조폐 공제 안에서도 실제 제작비와 발행권자의 몫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사례다.
시뇨리지와 화폐가치 훼손은 다른 개념이다
시뇨리지와 디베이스먼트(debasement)는 구분해야 한다.
디베이스먼트는 발행권력이 기존보다 주화의 무게를 낮추거나 귀금속 순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화폐기준을 바꾸는 일을 말한다.
조폐과정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비용과 발행권자의 몫을 공제하는 행위는 디베이스먼트와 구분해야 한다.

군주가 재정수입을 늘리려고 주화기준을 자주 바꾸거나 귀금속 함량을 크게 낮추면 현실에서는 두 문제가 연결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역사자료에서는 ‘얼마를 공제했는가’뿐 아니라 ‘주화의 공식 중량과 순도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
현대 시뇨리지를 같은 계산법으로 볼 수 없는 이유
현대의 지폐와 동전은 귀금속 가치가 액면을 직접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와 정부재정, 중앙은행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함께 봐야 하므로 중세 은화의 조폐수수료와 같은 방식으로 단순 비교할 수 없다.
흔히 “지폐 액면가에서 인쇄비를 뺀 금액이 모두 시뇨리지”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중앙은행 회계는 훨씬 복잡하다. 화폐발행에 대응해 보유하는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 중앙은행 이익의 정부 이전 방식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대에서는 현금발행 자체보다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와 이자수익을 함께 봐야 한다. 지폐를 발행하면 그만큼의 가치가 아무 비용 없이 정부에 바로 현금이익으로 들어가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귀금속 주화시대와 현대 화폐를 같은 계산식으로 묶으면 ‘발행권에서 수입이 생긴다’는 공통점만 남고 실제 제도 차이는 사라진다.
또한 시뇨리지의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주화가 자주 갱신되거나 조폐량이 많을 때는 발행권에서 얻는 수입이 커질 수 있었고, 조폐를 장려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는 경우도 있었다.
마무리
시뇨리지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동전을 만드는 권리가 경제적 권리였다는 점을 봐야 한다. 귀금속을 주화로 바꾸는 과정에는 실제 제작비가 들었고, 발행권자는 그 과정에서 수입을 얻었다.
다만 그 수입을 주화가치 훼손과 동일시하거나, 현대 화폐의 시뇨리지를 중세 조폐수입과 똑같은 계산식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차이를 놓치게 된다.
중세 조폐소에서 금속을 주화로 바꾸며 공제한 비용과 군주의 몫, 현대 중앙은행의 화폐발행 수익은 같은 계산식으로 묶이지 않는다. 공통점은 발행권에 경제적 가치가 붙는다는 데 있고, 실제 수입이 생기는 방식은 시대의 화폐제도에 따라 달라졌다.
참고자료
Martin Allen, Mints and Money in Medieval England, Chapter 6 “Profi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Bank of England, The Promise to Pay: What Backs Banknotes?
Alain Ize, “Spending Seigniorage: Do Central Banks Have a Governance Problem?”, IMF Working Paper No. 06/58,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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