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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1971년 영국 화폐 십진화, 240펜스에서 100펜스로

by 가온킴 2026. 9. 27.

1971년 2월 15일 이전 영국의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였다. 계산하면 1파운드는 240펜스였다.

덧셈과 뺄셈뿐 아니라 가격표와 회계, 기계계산에서도 10진법과 다른 규칙을 사용해야 했다. 영국은 파운드 자체를 없애지 않고 그 아래 단위를 다시 설계했다. 1파운드=100펜스라는 현재의 체계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목차

     

    왜 240펜스 체계를 바꾸려 했을까

     

    파운드·실링·펜스 체계는 오래된 관습이었지만 현대 경제에서는 계산 부담이 컸다. 상품가격을 합산하거나 회계장부를 정리할 때 12와 20을 번갈아 환산해야 했다.

    다른 여러 나라가 이미 십진화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 거래와 전산화 측면에서도 변화 필요성이 커졌다.

    영국 안에서도 회계와 계산기계의 발전은 기존 체계의 번거로움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12펜스=1실링, 20실링=1파운드라는 이중 변환은 사람이 익숙하면 처리할 수 있지만 기계적 계산과 대량 회계에서는 추가 절차가 필요했다.

    십진화 논의는 단순히 ‘외국이 모두 10진법이니 따라가자’는 문제가 아니라 현대적인 회계·유통·기계처리에 맞는 단위체계를 만들려는 개혁이었다.

    영국 정부는 1961년 십진화를 검토할 위원회를 설치했다. 논의 끝에 완전히 새로운 화폐단위를 만드는 대신 익숙한 파운드는 유지하고, 그 아래를 100개의 새 펜스로 나누는 방식이 선택됐다.

    1966년 결정 뒤 바로 새 돈을 쓰지 않은 이유


    1966년 3월 1일 당시 재무장관 제임스 캘러헌은 십진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화폐단위를 바꾸는 일은 새 동전 몇 개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은행계좌와 기업회계, 상점 가격표, 자판기와 계산기, 급여와 세금까지 모두 같은 체계로 맞춰야 한다.

    왕립조폐국은 웨일스 란트리산트에 새로운 시설을 마련하고 대량의 십진주화를 생산했다. Decimal Day를 준비하면서 약 20억 개의 동전이 만들어졌다.

    은행과 기업도 장부와 전산체계를 새 단위로 바꾸는 훈련을 했다. 시민들에게는 환산표와 교육자료가 배포됐고 학교와 방송에서도 새 계산법을 알렸다.

    1970년대 초 영국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기존 파운드·실링·펜스 장부를 십진 화폐단위로 환산하는 모습
    영국은 십진화를 앞두고 은행과 기업의 장부, 가격표, 계산기준을 새 화폐단위로 바꾸기 위해 수년간 준비했다.

     

    Decimal Day 전에 새 동전을 먼저 풀었다


    1968년에는 새 5펜스와 10펜스 동전이 먼저 유통됐다. 각각 기존 1실링과 2실링에 정확히 대응하도록 가치와 크기를 맞췄기 때문에 기존 체계 안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1969년에는 일곱 각 형태의 50펜스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공식 전환일이 오기 전에 이미 새 동전을 손에 익혔다. 화폐개혁을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생활 속에 미리 넣어두는 과정으로 만든 것이다.

    새 5p와 10p를 기존 1실링과 2실링과 같은 크기와 가치로 설계한 방식은 전환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낯선 새 숫자도 기존 동전과 직접 대응시키면서 이해했다.

    1969년 도입된 50p의 일곱 각 형태도 새로운 체계를 미리 경험하게 했다. 화폐개혁 전에 실제 동전을 손에 익히게 하는 방식은 교육자료만 배포하는 것보다 생활 속 학습효과가 컸다.

    1971년 2월 15일에는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Decimal Day인 1971년 2월 15일, 영국은 공식적으로 1파운드=100펜스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새 ½p, 1p, 2p가 법정통화가 됐고 이미 유통 중이던 5p·10p·50p와 함께 새 체계를 구성했다.

    은행은 직전 며칠 동안 계좌와 장부를 전환했다. 영란은행도 2월 11일과 12일 문을 닫고 계좌와 주식등록부 등을 십진단위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1971년 영국 상점에서 점원이 기존 주화와 새 5펜스·10펜스 동전을 함께 확인하며 계산하는 모습
    Decimal Day 전후 영국 상점에서는 기존 실링과 새 십진 주화가 일정 기간 함께 사용되면서 점원과 소비자가 두 계산체계에 적응했다.

     

    옛 동전이 바로 사라지지 않은 이유


    십진화가 비교적 순조로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존 주화 일부를 새 체계 안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1실링과 새 5펜스, 2실링과 새 10펜스의 가치와 크기를 맞춘 덕분에 전환 전부터 새 동전을 공급하고 전환 뒤에도 옛 주화를 잠시 함께 쓰게 했다. 거리에서는 신구 화폐가 일정 기간 함께 사용됐고 실제 전환기간은 그해 8월 말까지 이어졌다.

    수십억 개의 동전을 하루에 바꾸는 대신 신구 화폐의 공존기간을 만든 것이다.
     

    십진화는 파운드의 가치를 낮춘 개혁이었을까


    십진화는 파운드의 구매력을 일정 비율로 줄인 평가절하나, 1,000원을 1원으로 바꾸는 식의 리디노미네이션과 성격이 다르다.

    기존 1파운드가 20실링=240 옛 펜스로 나뉘던 계산규칙을 100 새 펜스로 바꾼 것이다.

    기존 단위와 새 단위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더 쉽게 보인다.

    십진화 이전 십진화 이후 같은 가치
    1실링(12 옛 펜스) 5펜스
    2실링(24 옛 펜스)  10펜스
    1파운드(240 옛 펜스) 100펜스


    파운드 한 단위의 가치 자체를 잘라낸 개혁은 아니었다. 240개의 옛 펜스로 나누던 계산법을 100개의 새 펜스로 바꾸고, 전환 전부터 신구 주화를 함께 쓰게 해 사람들이 새로운 계산에 익숙해질 시간을 준 것이다.


    참고자료
    The Royal Mint Museum, The Story of Decimalisation
    Bank of England, The Bank of England and Earlier Proposals for a Decimal Coinage
    Bank of England, Annual Report 1971
    Bank of England, Lessons from Decimali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