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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17세기 영국 상인 토큰, 정부 대신 상점이 동전을 만들다

by 가온킴 2026. 9. 10.

17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빵이나 맥주처럼 값싼 물건을 살 때 필요한 소액 동전이 부족했다. 큰돈보다 거스름돈으로 쓸 낮은 액면의 부족이 일상거래에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고, 상점과 선술집, 커피하우스는 직접 소액 거래용 금속 토큰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왕립조폐국이 발행한 법정주화가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자신의 이름과 신용으로 내놓은 돈이었다.

17세기 영국 상점 계산대에 여러 종류의 민간 상인 토큰이 놓여 있는 모습
17세기 영국에서는 소액주화가 부족하자 상점과 선술집 등이 자체 금속 토큰을 만들어 거스름돈과 소액거래에 사용했다.

 

작은 토큰에는 발행자의 이름이 필요했다

상인 토큰에는 발행자 이름이나 이니셜, 상점 위치, 가게를 상징하는 그림이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국가 문장이 없는 민간 화폐였기 때문에 “누가 이 토큰을 다시 받아줄 것인가”를 표시할 필요가 있었다. 대영박물관과 런던박물관에는 개인 발행자가 확인되는 17세기 영국 파딩 토큰들이 남아 있다.

실제 토큰에는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거리나 지역을 알아볼 수 있는 표식, 특정 업종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들어간 사례가 많다. 문자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가게의 상징그림이 발행자를 알아보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연구자에게 이런 표식은 화폐 이상의 자료다. 당시 상점명과 업종, 지역상권을 복원하는 단서가 되어 도시생활사를 읽는 작은 기록물로도 가치가 있다.

상점이나 선술집의 표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책임 주체를 알려주는 정보였다.

값은 금속보다 ‘다시 받아주는 약속’에서 나왔다

토큰은 구리 합금이나 황동처럼 비교적 값싼 금속으로 만들기 쉬웠다. 녹였을 때 얻는 금속값이 액면과 같아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상점이 하프페니 가치의 토큰을 거스름돈으로 내주고 다음 방문 때 다시 하프페니로 받아준다면, 손님도 그 토큰을 같은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변 상인들이 발행자를 알고 있다면 다른 가게에서도 제한적으로 통했다.

손님이 상점에서 민간 토큰을 제시하고 상인이 물건값으로 다시 받아주는 모습
민간 토큰은 발행한 상점이 다시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지역의 소액거래와 거스름돈에 사용됐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힘을 가진 법정화폐가 아니라 지역 상권의 평판과 반복거래에 기대는 지급수단이었기에 발행자가 문을 닫거나 토큰을 거부하면 문제가 생긴다. 

토큰은 작은 광고판이기도 했다

국가 주화와 달리 상인 토큰에는 사업자의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났다. 커피하우스, 선술집, 특정 직업을 상징하는 그림이 들어가면서 토큰 자체가 상점의 위치와 이름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1648년 무렵부터 1670년대 초까지 발행된 수많은 토큰을 보면 당시 어느 거리에서 어떤 업종이 영업했는지 추적할 수 있을 정도다.
돈의 역사 자료이면서 동시에 도시 상업과 지역사회의 기록이 된 것이다.

토큰을 발행한 상점의 업종이 생활밀착형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루에 적은 금액을 여러 번 주고받는 선술집과 식료품점은 거스름돈 부족을 더 자주 겪는다. 민간 토큰은 이런 소액거래가 집중된 곳에서 특히 실용적이었다.

토큰의 확산은 ‘민간이 화폐발행권에 도전했다’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라기보다, 소액 동전 한두 개의 부족이 일상거래에 얼마나 큰 불편을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생활경제의 기록에 가깝다.

공식 소액주화가 늘자 지역 토큰은 밀려났다

찰스 2세 시기부터 정부가 구리 하프페니와 파딩을 공급하면서 민간 토큰의 역할은 점차 줄었다. 1672년 공식 구리주화 발행을 전후해 흐름은 달라졌다.

민간 토큰은 가까운 지역에서 부족한 잔돈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멀리 이동하면 낯선 상점 이름이 적힌 토큰의 통용력은 약해졌다.

정부가 안정적인 소액주화를 제공하면 지역마다 발행자의 평판을 따로 확인할 필요도 줄어든다. 상인 토큰은 국가화폐를 대체하려는 거대한 실험이라기보다, 소액주화 공급의 빈틈을 지역상권이 메운 흔적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가까운 동네에서는 발행자의 가게와 평판을 알기 때문에 작은 금속조각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멀리 이동하면 그 정보가 힘을 잃었다. 국가가 발행한 파딩과 하프페니가 넓게 통용되자 지역별 발행자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줄었다.

상인 토큰 자체는 사라졌지만 표면에 남은 이름·거리·업종·가게 상징은 남았다. 잔돈이 부족했던 몇십 년 동안 돈과 상점 간판이 한 금속조각에 겹쳐 있었고, 오늘날에는 그 표식이 17세기 도시 상권을 복원하는 자료가 된다.

 

참고자료
London Museum, 17세기 런던의 trade token 및 소액화폐 관련 자료
The British Museum, 17세기 영국 상인 토큰 소장 자료
The Royal Mint Museum, Charles II 시기 하프페니·파딩과 구리 주화 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