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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동판화폐와 구리본위제 17세기 스웨덴에서는 사람이 한 손에 들기 어려운 돈이 만들어졌다. 넓은 구리판에 왕실 표식과 액면을 찍은 동판화폐(plate money)였다. 가장 큰 10달레르 동판화폐는 무게가 약 19.7kg에 달했다. 왜 이렇게 불편한 돈을 만들었을까. 배경에는 은 부족과 풍부한 구리 생산, 그리고 주요 수출품인 구리의 가격을 지키려는 국가정책이 함께 있었다.구리가 풍부했기 때문에 오히려 구리 가격이 문제였다17세기 스웨덴은 유럽의 대표적인 구리 생산국이었다. 팔룬 광산은 당시 유럽 구리 공급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구리는 해외에 팔아 국가재정을 마련하는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반면에 은과 금은 충분하지 않았고 장기간의 전쟁은 귀금속 부족을 심화시켰다. 스웨덴은 1624년 구리를 본격적인 화폐재료로 사용하.. 2026. 9. 14.
호주 홀리 달러와 덤프, 은화 한 닢을 두 화폐로 바꾸다 1813년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멀쩡한 스페인 은화의 가운데를 잘라냈다. 바깥쪽 고리 모양은 홀리 달러(Holey Dollar), 잘라낸 중앙 조각은 덤프(Dump)가 됐다. 동전 하나를 두 종류의 돈으로 바꾼 이유는 단순히 화폐 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민지를 괴롭히던 주화 부족과 은화의 해외 유출을 함께 줄이기 위해서였다.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왜 동전이 자꾸 빠져나갔을까19세기 초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영국 주화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은화와 네덜란드 길더, 인도 루피 등 여러 외국 화폐가 함께 유통됐다. 영국에서 멀리 떨어진 식민지라 필요한 만큼의 주화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웠고, 어렵게 들어온 은화도 수입물품 대금을 치르면 다시 해외로 빠져나갔다. 1800년 필립 기들리 킹 총독은 .. 2026. 9. 13.
왜 트럼프 카드로 만들어졌을까? 뉴프랑스 카드화폐의 역사 1685년 북아메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뉴프랑스에서는 병사들에게 지급할 금속화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식민지 재정을 맡은 인탕당(intendant) 자크 드 묄(Jacques de Meulles)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던 트럼프 카드에 금액을 적고 공식 서명을 더해 임시 지급수단으로 사용했다. 1685년의 카드화폐를 들여다보면 뉴프랑스의 화폐공급 구조가 선명해진다. 본국에서 동전을 배로 실어 와야 했던 식민지의 사정, 행정당국의 상환 약속, 발행이 누적될 때 생기는 재정부담이 모두 이 사례 안에 들어 있다. 목차 1685년, 병사 급료가 카드로 바뀐 이유뉴프랑스는 필요한 금화와 은화를 충분히 현지에서 만들지 못했고 본국 프랑스에서 보내오는 자금에 크게 의존했다. 대서양을 건너는 선박 일정이 어긋나면 행.. 2026. 9. 12.
포위된 도시에서 만든 돈 공성화폐: 뉴어크 은화와 라이덴 종이 화폐 성문이 닫히고 적군이 도시를 에워싸면 식량과 무기뿐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던 화폐까지 끊긴다. 그 와중에도 성 안에서는 병사에게 급료를 주고 식량과 물자를 사며 일상거래를 이어가야 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만든 임시 지급수단을 공성화폐(siege money)라고 부른다. 목차 포위된 도시에 왜 새로운 화폐가 필요했을까공성전은 도시의 공급선을 차단해 버티기 어렵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외부 상인과 세금, 지원군을 통해 들어오던 주화도 줄어들었다. 수비군의 급료는 도시 방어를 지속하는 데 직접적인 문제였다. 정상 화폐가 바닥나도 병사와 시장의 지급을 멈출 수는 없었다. 미국화폐학회는 여러 공성화폐가 수비군 급료와 도시 내부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됐다고 설명한다. 공성전이 길어질수록 평시의 화폐공급망은 .. 2026. 9. 11.
독일 노트겔트의 역사, 도시가 만든 비상화폐 독일 노트겔트(Notgeld)라고 하면 1923년 초인플레이션기에 찍힌 수백만·수십억 마르크 지폐가 먼저 떠오르기 쉽다. 노트겔트의 시작은 초인플레이션보다 앞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사람들이 금속화폐를 보관하고 주화 유통이 줄면서 여러 지역에서 잔돈 부족이 나타났다. 도시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은 일상의 지급을 이어가기 위해 자체 비상화폐를 발행했다. Notgeld는 말 그대로 ‘비상시의 돈’이라는 뜻이다.1914년 노트겔트는 작은 액면의 빈자리를 메웠다전쟁 초기에 문제가 된 것은 거대한 액면의 지폐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거래였다. 주화가 부족해지자 지방정부와 기업 등이 소액의 임시 지급수단을 만들었다. 발행범위는 지역적이었다. 독일 전체에 통용되는 하나의 새 국가화폐 대신 각 지역의 사.. 2026. 9. 11.
미국 신플라스터, 민간 소액지폐 1837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은행과 큰 거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은행들이 금·은화 지급을 중단하고 정화(specie)가 시중에서 사라지자, 빵이나 신문을 사고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작은 거래부터 불편해졌다. 이 틈에서 은행뿐 아니라 상점과 기업, 지역의 여러 발행자가 몇 센트짜리 작은 종이 지급수단을 내놓았다. 이런 저액권 가운데 상당수가 신플라스터(shinplaster)라는 이름으로 불렸다.1837년에는 왜 작은 액면부터 부족해졌을까금융불안이 커지면 사람들은 가치가 확실하다고 느끼는 금속화폐를 손에 쥐고 있으려 했다. 시장에서 금화와 은화가 줄어들면서 큰 지폐가 있어도 작은 거스름돈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은행이나 상점, 기업이 자체적인 저액권을 발행한 이유는 거대한 금융거래보다 일상적인 잔돈을 보충하기.. 2026.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