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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부러지면 대장장이에게 가야 했던 돈, 서아프리카 키시 페니의 역사

by 가온킴 2026. 9. 17.

길이 30~40cm 안팎의 가느다란 철막대가 부러졌다고 생각해 보자. 철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어도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두 조각을 바로 돈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대장장이가 다시 이어 정상적인 형태로 복원해야 유통이 가능했다.

이 규칙은 키시 페니(Kissi penny)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다. 키시 페니는 철의 무게만큼 값을 인정받은 원재료가 아니라, 정해진 형태와 제작기술, 계산관습까지 포함한 화폐였다.

부러진 철막대는 왜 바로 돈이 될 수 없었을까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 자료에서는 키시 페니가 철을 제련하고 단조하는 행위에 부여된 상징성과 연결돼 ‘영혼이 있는 동전(coins with soul)’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부러진 두 조각의 철을 모두 가지고 있어도 정상적인 화폐가 아니었다. 대장장이가 불에 달구어 이어 붙이고 원래 형태로 복원한 뒤에야 다시 돈으로 받아들여졌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서아프리카 대장장이가 부러진 키시 페니 철막대를 불에 달구어 이어 붙이는 모습
부러진 키시 페니는 철의 양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바로 화폐로 사용할 수 없었고, 대장장이가 정상적인 형태로 복구한 뒤 다시 유통할 수 있었다.



키시 페니는 철의 재료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알아볼 수 있는 완전한 형태 자체가 거래조건의 일부였다.

길고 비틀린 모양에는 철공기술이 남아 있었다

키시 페니는 일반적인 동전과 전혀 다르다. 스미스소니언 소장품에는 길이 약 26cm부터 47cm를 넘는 것까지 있으며, 일반적인 사례는 30~38cm 안팎으로 설명된다.

가느다란 철을 길게 늘이고 비틀어 몸통을 만들고 양끝을 서로 다르게 가공했다. 한쪽을 얇고 넓게 펴거나 다른 쪽을 뾰족하게 만드는 방식이 나타난다.

이 형태는 대장장이가 철을 늘이고 두드리고 다듬는 여러 기술을 한 물건에 남겼다. 일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완성품은 평범한 철막대와 구별되는 표지가 됐다.

양끝을 서로 다르게 만든 형태도 단순한 장식으로만 보기 어렵다. 일정한 외형이 반복돼야 시장에서 익숙한 키시 페니로 알아보고, 부러진 뒤 제대로 복원됐는지도 판단하기 쉬웠다.

같은 무게의 철이 모두 같은 돈은 아니었다. 키시 페니에서는 재료뿐만 아니라 형태와 제작관습까지 화폐의 조건이 됐다. 철이라는 재료 위에 지역의 제작규칙이 더해져야 정상적인 화폐단위가 됐다.

큰 거래에서는 20개 묶음이 계산단위가 됐다

긴 철막대 한 개로 작은 거래를 할 수 있어도 큰 금액에서는 수백 개를 하나씩 세는 일이 불편하다. 큰 거래에서는 20개씩 묶어 계산하는 관습이 쓰였다.

스미스소니언 자료에는 낱개의 키시 페니가 소액구매에 쓰이고, 큰 지급에서는 보통 20개 단위로 묶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묶음계산은 길고 가느다란 철막대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했다. 수백 개를 일일이 세기보다 20개짜리 묶음 몇 개라는 식으로 수량을 관리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이 방식은 오늘날 지폐다발처럼 표준화된 포장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거래규모가 커질 때 반복되는 단위를 만들어 계산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관습이었다.

20세기 초 소 한 마리의 값이 20개짜리 묶음 30~40개에 해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서아프리카 시장에서 키시 페니 철막대를 20개 단위로 묶어 가축 거래금액을 계산하는 모습
큰 거래에서는 키시 페니를 20개씩 묶어 계산하면서 수백 개의 철화폐를 보다 편리하게 세고 전달했다.

 

대장장이는 화폐 유통의 일부였다

키시 페니는 부러진 뒤 수리하지 않으면 정상화폐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대장장이의 역할은 제작단계에서 끝나지 않았으며 유통 중 손상된 화폐를 다시 시장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새로운 국가주화와 지폐가 들어온 뒤에도 키시 페니는 일정 기간 함께 사용됐다. 오래 사용하던 가격기준과 묶음계산법이 한 번에 사라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계속 키시 페니로 가격을 기억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동안 두 화폐체계는 한동안 공존했다.

화폐 교체는 물건을 바꾸는 일뿐만 아니라 계산습관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키시 페니가 오래 살아남은 배경에도 지역의 시장관행과 계산습관이 함께 있었다.

키시 페니의 독특함은 철이라는 재료보다 제작·사용·수리가 한 화폐 안에서 이어졌다는 데 있다. 부러지면 대장장이에게 돌아가야 했고, 큰 거래에서는 묶음단위로 확장됐다.

 

참고자료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Kissi Penny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Kissi penn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