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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카탕가 크로스: 십자가 모양 구리 주괴가 화폐가 된 사유

by 가온킴 2026. 9. 18.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 남동부 카탕가 지역에서는 X자나 넓은 십자가 형태의 구리 주괴가 오랫동안 만들어졌다. 흔히 카탕가 크로스(Katanga Cross)라고 부르는 이 물건은 처음부터 시장의 잔돈이 아니었다. 고고학 자료를 살펴보면 부와 지위를 나타내던 구리 주괴가 점차 교환수단으로 기능을 넓혀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무덤 속 구리 십자가와 초기의 쓰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프리카미술관은 14세기 무덤에서 십자가형 구리 주괴가 죽은 사람의 가슴에 놓인 사례를 소개한다. 이 시기에는 재산과 지위의 표지에 가까웠던 것으로 해석된다.

16~17세기 무덤에서는 여러 개의 십자가가 손이나 허리 부근에서 발견되고, 교환수단의 역할도 커진 것으로 설명된다.

옛 카탕가 지역에서 재산과 지위의 상징으로 여러 개의 구리 크로스를 보관한 모습을 재현한 장면
초기 카탕가 크로스는 시장거래뿐 아니라 부와 지위를 나타내는 구리 주괴로 보관되거나 매장되기도 했다.

 


화폐 기능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구리를 일정한 형태로 보유하던 관습이 거래로 확장된 과정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왜 구리를 X자 형태로 만들었을까

카탕가는 구리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장인들은 광석에서 구리를 제련한 뒤 모래바닥에 주형을 만들고 녹인 금속을 부어 X자나 넓은 H자 형태의 주괴를 만들었다.

모래주형 덕분에 같은 기본형을 반복할 수 있었지만, 수공생산이라 크기와 무게까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실제 거래에서는 형태와 크기, 지역에서 익숙한 유형을 함께 판단했다.

주괴의 네 팔이 넓게 퍼진 형태는 운반과 보관에서 일반 막대와 다른 특징을 만들었고, 무엇보다 ‘카탕가 구리’라는 알아보기 쉬운 형상을 제공했다.

비슷한 형태의 반복은 시장에서 카탕가 크로스를 평범한 구리 덩어리와 쉽게 구별하고, 익숙한 하나의 주괴 단위로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

카탕가 크로스라는 이름 때문에 종교적 십자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구리를 일정한 형태로 주조한 주괴이자 화폐였다.

상업적 사용이 늘며 작아진 카탕가 크로스

초기에는 비교적 큰 구리 크로스가 많았지만 상업적 사용이 확대되면서 더 작은 형태가 등장한 것으로 설명된다.

큰 주괴는 부를 저장하거나 지위를 드러내기에는 적합해도 자주 주고받는 시장거래에는 불편했다. 더 작은 단위의 등장은 카탕가 크로스의 기능이 실제 교환 쪽으로 넓어졌다는 단서다.

크기가 큰 초기 카탕가 크로스와 더 작은 후기 구리 크로스를 나란히 비교한 모습
카탕가 크로스는 시대와 용도에 따라 크기가 달라졌으며, 거래가 확대되면서 보다 작은 주괴 형태도 등장했다.

 

액면 숫자 없이 가치를 계산한 방식

카탕가 크로스에는 현대 동전처럼 ‘1’이나 ‘5’라는 숫자가 찍혀 있지 않았다. 같은 계통의 주괴라도 크기와 유형, 사용지역, 시기에 따라 평가는 달랐다.

생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경향이 기록되기도 한다. “카탕가 크로스 한 개는 항상 무엇과 같았다”는 식의 단일 환율로 설명하면 실제 지역차이를 놓치게 된다.

상품화폐에서는 국가가 정한 액면보다 시장에 익숙한 유형과 금속가치, 지역의 교환관습이 더 크게 작용했다.

화폐 사용이 줄어든 뒤에도 남은 상징성

카탕가 크로스는 필요하면 다시 녹여 장신구나 다른 구리물건의 재료로도 썼다. 화폐기능과 원자재 기능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화폐 사용이 줄어든 뒤에도 X자 형태는 지역의 상징으로 남았다. 1960년 카탕가 분리독립 시기 상징에 사용됐고, 이후 카탕가 국립은행이 발행한 주화들에도 크로스 형상이 들어갔다.

전통 상품화폐의 형상은 이렇게 근대 국가화폐의 디자인 안에 다시 등장했다. 한때 그 자체로 거래되던 구리 주괴가 나중에는 더 이상 직접 결제수단이 아니면서도 지역의 역사와 자원을 상징하는 그림이 됐다.

물건의 경제적 기능은 사라진 뒤에도 문화적 의미는 남아 카탕가 크로스의 역사는 다른 상품화폐와 구별되는 긴 후일담을 갖는다.

한때 돈이었던 X자 형태는 훗날 현대식 주화의 도안으로 다시 등장했다.

무덤에 놓이던 큰 구리 주괴, 시장에서 쓰기 편해진 작은 형태, 카탕가 국립은행이 발행한 주화에 다시 등장한 X자 문양은 서로 다른 시대의 장면이다. 카탕가 크로스의 용도는 그 사이 재산의 표지에서 거래수단으로, 다시 지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동했다.

 

참고자료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Katanga Cross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Ingots
The British Museum, Katanga type copper cross (ha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