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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역사

가온킴 저울과 분동으로 본 옛 주화 가치 확인의 역사

by 가온킴 2026. 9. 3.

오늘날 동전을 받을 때 무게를 확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500원짜리 동전이 조금 닳았다고 해서 계산대에서 저울을 꺼내지도 않는다. 액면과 규격이 이미 정해져 있고, 평범한 거래에서는 동전 속 금속의 양을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금화와 은화가 널리 쓰이던 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주화에는 왕이나 도시의 문장, 액면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조폐소를 떠난 뒤에도 항상 처음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유통으로 닳을 수 있었고, 가장자리에서 금속을 떼어낸 주화가 섞이기도 했다. 국제교역이 활발한 시장에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든 금화와 은화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이때 작은 저울과 분동은 거래자가 주화의 상태를 확인하는 도구가 됐다. 저울은 동전의 가격을 자동으로 정해주는 기계라기보다, 눈앞의 주화가 알려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실무도구에 가까웠다.

동전의 이름만 알아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주화의 문양은 어느 나라에서 만든 돈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재 상태까지 보증하지는 못했다.

귀금속 주화는 실제 금과 은을 담고 있었다. 상태가 좋은 동전과 오랫동안 닳은 동전, 일부가 잘려나간 동전의 무게가 다르면 거래자는 손해를 볼 수 있다. 하여 가치가 큰 금화나 낯선 외국 은화를 받을 때는 작은 차이도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모든 거래에서 모든 동전을 일일이 저울에 올렸다고 볼 필요는 없다. 익숙한 소액주화는 외형과 경험만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울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은 가치가 큰 주화, 상태가 의심되는 돈, 처음 보는 외국주화처럼 별도의 확인이 필요한 경우였다.

당시의 거래자는 동전 한 닢을 볼 때 오늘날보다 더 많은 정보를 동시에 읽어야 했다. 어느 군주의 주화인지, 어느 지역에서 만든 것인지, 오래 유통된 흔적이 있는지, 가장자리가 비정상적으로 줄지 않았는지 살핀 뒤 필요하면 무게를 확인했다. 저울은 이 여러 판단 가운데 마지막 확인수단에 가까웠다.

금화처럼 한 닢의 가치가 큰 경우에는 작은 중량 차이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한 번의 거래에서는 몇 분의 1그램 차이가 작아 보여도, 많은 주화를 반복해 받는 상인과 환전상에게는 누적 손실이 됐다. 무게 확인은 돈의 이름을 알아보는 일과 별개의 실무였다.

 

옛 상인이 휴대용 손저울에 금화와 은화를 올려 무게를 확인하는 모습
귀금속 주화가 널리 쓰이던 시장에서는 가치가 크거나 상태가 의심스러운 동전을 받을 때 작은 손저울로 무게를 확인하기도 했다.

 

저울보다 중요한 것은 비교할 기준이었다

저울만 있어서는 주화가 무거운지 가벼운지 판단할 수 없다. 무엇과 비교할 것인지 정해져 있어야 한데 그 비교 기준으로 쓰인 물건이 주화용 분동(coin weight)이다.

대영박물관에는 17세기 초 암스테르담에서 제작된 손저울과 여러 주화용 분동이 나무상자에 들어 있는 세트가 남아 있다. 이 분동들은 단순히 10g, 20g처럼 일반적인 무게만 표시하는 추와는 달랐다. 특정 금화나 은화의 기준과 연결된 분동을 함께 사용했다.

상인은 확인하려는 주화를 한쪽 접시에 놓고, 그 주화에 대응하는 분동을 다른 쪽에 올려 균형을 살폈다. 기대되는 기준과 큰 차이가 난다면 동전을 그대로 받을지 다시 판단해야 했다.

주화용 분동에는 실제 주화의 모습이나 상징을 떠올릴 수 있는 표시가 들어간 사례도 있다. 

시장에서는 한 종류의 금화만 상대하지 않았고, 그에 맞춰 여러 종류의 분동을 한 세트로 보관했다. 분동은 단순한 ‘추’가 아니라 어떤 주화를 어느 기준으로 볼 것인지 알려주는 물건이었다.

다른 금속을 섞어 무게를 맞춘 위조품이라면 중량만으로는 잡아내기 어렵기에 분동과 균형이 맞아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무게 확인은 외관 관찰과 금속 감별을 대신하기보다 서로 보완했다.

작은 나무 상자는 휴대용 화폐 기준표와 비슷했다

여러 종류의 분동을 한 상자에 넣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시장에 서로 다른 지역의 주화가 함께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한 도시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지역의 금화와 은화가 오갔고, 환전상이나 상인은 각 주화의 특징을 알아야 했다.

오늘날 환율표나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법한 기준을 당시 상인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동으로 확인했다. 무게만 안다고 환율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고 주화의 순도, 지역의 수요, 법적 평가도 실제 교환가치에 영향을 줬다.

나무 상자 안에 휴대용 저울과 여러 종류의 주화용 분동이 정리되어 있는 모습
주화용 분동 상자에는 서로 다른 금화와 은화를 비교하기 위한 기준물이 들어 있어, 상인이 주화별 무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리로 만든 주화 분동도 남아 있다

주화의 무게를 기준물과 비교하는 관행은 17세기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9세기 초 이집트에서 사용된 유리제 주화 분동이 남아 있다. 금화의 중량을 확인하는 데 쓰인 물건으로 설명된다.

암스테르담의 금속 분동 세트와 재료와 형태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돈을 확인하려면 먼저 정상적인 상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준이 필요했다.

박물관에 남은 작은 저울과 분동 상자를 들여다보면 당시 상인이 무엇을 기억해야 했는지가 보인다. 어떤 주화에 어떤 분동을 써야 하는지 알아야 저울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의 돈을 구별하고 기준 무게와 대조하던 지식이 손바닥만 한 도구 상자 속에 함께 들어 있었던 셈이다.

 


참고자료
The British Museum, 주화용 분동·손저울·분동 상자 소장 자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집트 유리제 Coin Weight 소장 자료